애틀란타 라이프

애틀란타 마흔 일곱번째 일기 - 방학과 개강 (07/19-08/26)

워커홀릭 2022. 9. 18. 04:37

오늘 Taro가 죽었다.

룸메이트 친구가,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이 우는 소리가 거실에서 들린다. 8년동안 가족이었던 반려토끼가 사라진 날,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조용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거든다.

 

앞 마당에 묻어주고 싶다는 친구들을 위해 길가를 쓸고 마당을 정리했다. 나도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풍경이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했으니까 등교를 하지 않았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자, 잠을 자는 듯이 평온해 보이는 Taro가 눈에 들어온다. 

 

 

 

 

 

방에 들어와 사진첩을 열어본다. 애틀란타에 온 초반과 달리 Taro 사진을 그닥 찍지 않았다는 것이 체감이 된다.

 

애틀란타에 다시 돌아온지 2달이 지났다. 5월 한국으로 돌아가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고, 7월 샌프란 -> LA -> 라스베가스로 이어지는 가족 여행도 잘 마무리 했다. 분명 여름에 나는 즐거웠고 계속 미소 짓고 있었고 행복했다. 꿈만 같았거든.

 

라스베가스에서 애틀란타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힘들었지만, 친구들의 선물로 방을 다시 정리하고, 집으로는 여행 사진을 인화해서 전송했다. 영상을 만들려고 촬영을 했지만 편집할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편집을 하지 못 했다. 사진을 받은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여행 이후 사진이 정말로 별로 없다.

학교 집, 학교 집, 학교 집...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연구에 진전은 없다. 이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벤트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어느 주말에는 닉슨의 이사를 도와주면서 친구들과 다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고, 첸이 사온 멜론을 잘랐더니 루시가 맛을 보고 좋아하는 사진... ㅋㅋ 다른 주말에는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애틀란타로 돌아온 선배들의 뒷풀이에 참석하기도 했다. 새로 애틀란타에 온 신입생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방학이 금방 가버렸다. 돌아보니 정말 순식간에... 쏜 살 같이...

 

 

 

새 학기가 다가오니 내 밑으로 신입생 친구들이 들어왔다.

환영 행사를 가지고, 캠퍼스 투어를 같이 다니니까 학년이 올랐음을 실감한다.

생활하는데 공부하는데 필요한 정보들과 자료들을 챙겨주는데 여러번 시간을 쏟았다.

그 외에도 교환을 왔거나 박사를 온 연대 후배들을 위해 장을 보기도 했다. 처음 왔을 때 선배들이 이 정도까지 챙겨준 것은 아니지만, 호주와 영국에서 지낼 때 선배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생활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정신 없이 시작했던 1학년이 복잡한 감정과 함께 끝이 나버렸다.

1학년 First Year Presentation 발표와 통과, 그리고 나도 이제 진짜로 2학년이 되버린 것이다.

 

 

발표 전날 밤에 혼자 강의실에서 미리 연습을 하고, 새벽에 학교에 나와 연습을 여러번 했다.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나보다. 새벽에 연습이 지루해, 시키지도 않은 학과 행사 포스터를 만들어서 화면에 띄우고 교수님들과 학생들을 맞이했다. 이후에는 방학 때 참석했던 학회에서 발표상을 받기도 했는데, 발표의 마무리도 학회의 수상도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냥 시간이 되어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이렇게 살다보면 가끔 이런 행운도 찾아오려나...

 

 

 

 

Life 라는 짤에 오른쪽 "Life of Ph.D." 라는 문구와 이미지를 합성해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박사 생활은 '노답'인가... 자조적인 개그 짤이 되어버렸는데 여러 사람을 웃게 했으니 그걸로 족한 거 같기도...

 

솔직히 박사 과정이 즐거운 일의 연속은 아니다. 근데 그건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 보면 학년이 오르고, 과정은 끝나겠지. 그래서 평범한 일들을 꾸준히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하다. 공부랑 연구 뿐만 아니라... 새롭게 운동을 시작해도 꾸준히 하면 5년일 것이고, 새로운 언어나 취미를 공부해도 5년이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니까... 이런 글을 끄적이는데, 마침 핸드폰에 있는 사진이 위스키 병들이라 조금 민망하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쌓이면서 계속 쌓여가려나.

 

 

 

지금의 우울하고 힘든 마음이 나중에 돌아보면 별 게 아니었구나 깨닫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길 기원한다.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