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라이프

애틀란타 마흔 여섯번째 일기 - TPM Conference (5/10-05/12)

워커홀릭 2022. 9. 10. 06:13

글을 작성하는 오늘은 9월 9일,

첫 학회에 다녀온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TPM Conference에 대해 끄적이고자 한다. 

기억을 돌아보기 위해 내가 하는 두 가지 행동이 있는데, 그건 바로 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훑어보는 일과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살펴보는 일이다. 스토리야 별 생각 없이도 워낙 자주 올리지만, 게시물은 당시 생각이 조금 정제되면 올리고는 하니까, 그 글들을 읽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행복하지 않지만, 그날의 기억들은 분명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학회에 관한 전반적인 글은 언젠가로 미루도록 하고, 오늘 글은 해당 학회를 참석하면서 느꼈던 소회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Columbia 대학교에서 주최하지만, 올해는 마침 우리 학교가 주관하는 해였기 때문에 1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무리해서 참가했다. 1년전 예매해둔 비행기 티켓과 날짜가 아슬아슬하게 빗겨갔기 때문에, 이 학회에 참석하는 건 어쩌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학회는 내가 16년도 연세대에서 열렸고, 내가 처음으로 참가했던 글로벌 마케팅 학회였다. (첫 글로벌 학회는 아니었다. 세계적인 학회는 2015년 CHI Conference Seoul를 우연히 갔으니)

 

그래서 꼭 발표하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나는 사소한 데 의미를 두는 편이니까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지만, 처음 Welcome Reception에 갔을 때는 집에 가고 싶었다. 와인 사진은 그때의 기억이다.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학회 장소에 있었는데, 대부분 교수님들이라서 어울릴 수도 없고, 뻘쭘하게 서있는 것 자체가 조금 스트레스였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내 친구들은 종강 파티로 다같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만 학교에 남겨진 것이 왠지 모르게 조금 서글펐다. 사실은 "얼른 가고 싶다"라는 와츠앱을 보내면서 찍은 사진.

 

물론, 이런 생각은 금방 반전되었다. 곧 박사생 친구들이 많이 와서 여러 친구들을 사귀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 익고 에모리 교수님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교수님들과 인사시켜 주셔서 정신없이 보냈던 것이다. 이름을 한두번 들었던 유명한 교수님들이 다수 계셨고, 나를 기억하지는 못 하겠지만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다... 주관하는 에모리 학교 학생 중 혼자만 참가했기 때문에, 같이 다닐 사람이 없어 조금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찌보면 그 때문에 더 주목 받는 느낌이 있었다. 

 

 

암튼, 그렇게 무사히 Welcome Reception 파티를 간 후에, Lucie 네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Party를 가질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전의 파티가 엄청난 정신 집중을 요하고 경우에 따라 조금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친구들과의 종강 파티는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둘째날, 네트워크 디너 전, 단체사진. 유명한 교수님들과 박사생 친구들 사이 중앙 자리에 내가 보인다... ㅋㅋ

 

둘째 날에는 내가 발표하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석 자체에 별로 불편함은 없었다. 학회가 시작하기 전에, 시간 별로 정말 듣고 싶은 발표들을 색칠해 두었는데, 진짜 듣고 싶은 발표보다 전날 안면을 텄던 사람들의 발표를 가게 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내 발표에 온다고 말했기 때문에 약간 상호 예의 처럼 되어버린 것... ㅎㅎ

 

예전에 학회들은 1일짜리 학회이거나, 발표 후 노는 데 집중해서 잘 몰랐는데, 이번에 교수님들을 도와 운영을 돕다 보니 조금 더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우선, 초반에 발표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더 많은 청중들 앞에서 발표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 더 유명한 대학의 연구자분들이 앞단에 위치한 것은 아닌가 싶기는 한데, 방이 여러개면, 유명한 연구자들의 방에 사람이 더 몰린다. 학회가 여러날짜에 걸쳐 진행된다면, 일정이나 비행의 문제로 먼저 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튿날 발표자로 배정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학회의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성향 상 빠르게 발표를 하고 이후 학회를 즐기는 것이 더 잘 맞는 사람이었다... 

둘째날 발표를 들으면서도, 행사에서 사람들을 인솔할 때도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달까? 왜냐면 내일 내 발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

 

2일차 행사 장소를 가면서도 많은 박사생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저녁을 먹으면서도 진정으로 즐기기는 어려웠고, 단체버스로 호텔로 인솔하는 역할을 하고 나서도 집에 오면서 굉장히 부담이었다고나 할까? 집으로 오면서도 밤에 구두를 신고 20분을 걸으면서 발표 연습을 여러번 했던 게 기억이 난다.

 

2022년 5월 11일 발표 전날 작성한 인스타그램

[첫 마케팅 학회 중간 후기]
Theory + Practice in Marketing 행사가 에모리에서 열린다는 공지가 올라왔을 때, 나도 꼭 발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대에서도 열렸던 국제적 행사가 돌고돌아 에모리에 찾아오다니! 그때 나는 학부생 신분으로 발표를 듣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박사 일년차 신분으로 발표를 해야한다.

그리고 이건 발표를 하기 전 남기는 후기. 발표를 잘 못 해서 추억들이 얼룩질까봐 남기는 끄적임이다. 작년에 인터뷰로 만났던 교수님과 옆자리에 앉아서 발표도 듣고, 대가의 강연을 1열에서 들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으니 이대로도 족하다 싶다. 특히 에모리 박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전 학장님이랑 투샷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을거 같다.

첫날 저녁에 와인 한잔을 받고 나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 걸고 쭈뼛거리다가, ‘집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벌써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지는 지금.. 발표까지 완벽하다면 너무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듯 하다. 제발 준비한 만큼만 실력 발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수업에서도 기말 발표로 2번이나 다뤘던 주제고, 걸어다니면서까지 끊임없이 외웠고, 연습했고... 그런데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긴장을 많이 해서 망할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마지막 날, 발표가 다 끝나니 정말 마음이 편했다. 

행복한 마음이었다.

 

Emory Goizueta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당시 Dean, 작년 인터뷰에서 나를 선택하지 않은 대가 교수님 ㅋㅋ 학회가 끝나고 남은 음식들과 음료를 경영대 친구들 뿐만 아니라, 퀄 시험을 준비하는 경제학과 친구들에게 가져다주고 교직원들에게 챙겨줬던 오지라퍼의 사진... 그리고 발표할 때 정말 멋졌던 Daniel 교수님

 

그리고 나서 점심 만찬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서 준비한 음식들이 많이 남았고, 나는 행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한 이후에... 남은 음식들을 친구들과 근무중인 교직원들에게 배달을 시작했다 ㅋㅋ 

 

다음날 나의 비행이 있었고, 짐은 아직 덜 싼 상황이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달까?

큰 숙제를 무사히 끝내고 나는 행복하게 애틀란타에서의 시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2022년 5월 13일 발표가 끝나고 한국을 가기 전 끄적인 인스타그램

“일등 할 거 같다”
19년도에 본선 평가에서 발표장을 나서며 했던 생각이었다. 비공개 심사라 앞의 팀들이 얼마나 잘했는지는 몰랐고, 뒤의 팀들이 얼마나 잘할지 몰랐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심사위원 분들이 만장일치로 대상을 주셨다는 것과 장내에 계신 박사님께서 “대상이 정해진거 같다”고 다른 분들께 문자 했다는 것은 나중에 들어 안 사실이지만

강연도 꽤 나가고 강의도 찍었는데 성격마저 수다스러우니 친구들은 내가 발표를 좋아하고 즐기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잘 못 하는 것을 꽤나 오랜 시간 두려워했다. 초등학교 때 너무 이르게 무대에 섰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 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 나의 발목을 잡았고, 어려움을 마주하면 포기하고 도망치는 성향은 그때의 영향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성악도 바이올린도 내게는 행복했던 기억이 아니라 창피한 기억들로 남아있고..

하지만 영어는 더 쉽지가 않았다. 외고, 카투사 어학병, 외국 프로젝트 경험들을 생각하면 이상하리만큼 영어는 오랜 시간 늘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많은 노력과 도전 끝에 한국어 발표가 늘었으니 영어 발표도 그럴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리고 드디어…! 멋진 분들 앞에서 다행히 발표를 잘 마무리 했고, 오랜 시간 함께할 친구들도 만났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설레서 잠에서 일찍 깬 다음날…

이번 학회는 정말 황홀한 기억으로 남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훌륭한 스승들을 만났으니 이제는 정말 내가 더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총평을 하자면... 1년 차에 발표라니...? 굳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니었던 거 같다. 굳이 급할 것도 없었는데... 배울 것이 많아 정말 바빴던 학기 중간에 페이퍼를 제출하고, 종강을 하자마자 학회에 참석해서 정신없이 보내면서 "아 나 정말 열심히 1년 보냈구나..." 하는 기분을 즐기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때 당시에 작성했다면 정말 행복했던 감정선이 묻어났을지도 모르지만.